Essay_당신의 시절

Editor 김성화 Photographer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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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안성준의 할아버지 안용덕 할아버지는 42년간 교단에서 영어를 가르치셨다. 학교를 오래 다니지 못하셨지만, 17세에 취업한 회사의 사장 아들에게서 알파벳을 배우며 독학을 시작하셨다. 논두렁을 걸으며 영어로 중얼거리는 할아버지를 보고 마을 사람들은 “용덕이가 공부를 시작하더니 미쳤다”고 했다. 전쟁 중 마을을 찾아온 미군부대를 할아버지가 통역하며 안내한 적이 있는데, 그런 오빠가 자랑스러웠는지 고모할머니는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목소리가 두 배로 커진다. 날짜가 적혀 있는 사진 속, 빌려 입은 듯 큼지막한 양복을 걸친 할아버지의 나이는 만 29세였다. 독학에 뜻을 세운 날을 기념하고자 매년 같은날 ‘셀카’를 찍으셨는데, 그 10주년을 맞아 찍은 사진이다. 지금 생각해도 퍽 낭만적인 기념방식이다. 익은곡식이 계절의 빛으로 일렁이는 풍경 앞에서도 젊은 당신의 눈빛은 단단하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정미환의 아버지 정대현과 어머니 길영미 가끔 부모님의 젊은 시절 앨범을 편다. 책장의 가장 구석자리에 꽂힌 낡은 사진첩들. 거기엔 미지의 시간이 있다. 앨범의 왼쪽, 젊은 시절의 아빠는 좀 퉁명스러워 보이는 미남이다. 80년대의 느낌이 다분한 갈색 양복이 멋지고, 엄마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는 마치 선원처럼 보인다. 오른쪽, 엄마의 사진들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 촬영된 것이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기차 안에서 친구들과 바깥을 내다보는 열일곱 살,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채 천진하게 웃고 있는 네 살, 언덕 위에서 외할아버지를 향해 돌아보는 다섯 살. 그때 엄마는 어떤 말을 배우고 있었을까? 그때 아빠는 어떤 꿈을 꿨을까? 결코 알 수 없고 앞으로도 알 수 없을 어제가 바랜 인화지에 남아 있다. 반쯤은 애틋하고, 반쯤은 부푼 마음으로, 다만 상상할 수 있을 뿐인 과거를 다시 바라본다. 그럴 땐 내게 남아 있는 미래보다 그 과거의 이야기를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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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김성화의 어머니 강미순 다섯 살 때였을까,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는 나이가 몇 살이야?” “응? 엄마 스물여덟 살.” “우와! 우리 엄마 나이 많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내 나이는 그 숫자보다 더 많다. 딸 둘을 낳았지만 엄마는 언제나 힘차고 쾌활했다. “성화야, 스크류바 아이스크림을 엄마랑 너랑 하나씩 먹으면 젓가락이 나와.” 엄마의 모든 것을 신뢰하던 나는 호기심에 눈을 반짝거렸다. 오랜만에 펼친 앨범은 추억을 우르르 쏟아 놓는다. 두 살 무렵 찍은 엄마의 사진을 본다. 이걸 왜 이제야 봤을까. 엄마도 아기였고, 소녀였고, 아가씨였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 어쩔 수 없는 먹먹함이 찾아온다. 삼각김밥 머리의 스물여덟살 엄마를 보며 말씀하신다. “나 너무 젊고 예쁘게 나왔다!” 엄마가 여전히 명랑하다는 게 나는 좋다. 계속 즐겁게 지내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질색팔색 싫어하는 파마머리 사진은 넣지 않았다.

 

1993년, 이다현의 어머니 김인옥 사진 속 엄마 아빠는 젊고, 나는 너무나 작다. 실감이 나질 않는다. 엄마가 저렇게 카메라를 향해 밝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도. 글 쓰는 게 좋아 문예창작과에 온 내게 거기 나와서 뭐 먹고 살 거냐며 걱정 섞인 타박을 했지만, 내 나이 때엔 엄마도 소설가를 꿈꿨다는걸. 막내딸로 태어난 엄마는 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 했지만 그 시절 여느 대학생들처럼 학생운동도 하고 졸업하자마자 취직도 했다. 그러다 아빠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을 했다. 최근 엄마의 사진을 찍었다. 최선을 다해 웃어도 엄마의 표정은 왠지 밝지 않았다. 지금 내가 옛날 사진 속 엄마와 비슷한 나이이기 때문일까.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던 엄마의 젊은 시절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