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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와 술, 시가의 제품 설명서를 읽는다.
제비꽃부터 썩은 나무 조각, 잔뜩 발효시킨 치즈에 이르기까지.
함께 나열되기 어려운 낱말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맛과 냄새의 세계란 이토록 복잡하고 황홀하다.

Editor 정미환 Photographer 김경수 Stylist 스타일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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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사전을 편다. 노트Note는 그리 복잡한 단어가 아니다. ‘명사’ 항목 아래 분류된 9가지 뜻은 전부 비슷한 맥락에서 출발한다. 기억을 돕기 위한 메모, 짧은 편지, 종이에 인쇄된 정보, 어조 혹은 기색. 문자로 경험을 저장하지 않았다면 인류에게 문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기록하며 살아간다. 맛과 냄새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향수를 설명할 때는 ‘톱 노트’와 ‘하트 노트’, ‘베이스 노트’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고급 시가들 역시 냄새를 적은 공식 노트로 애연가를 유혹한다. 발효나 숙성을 거친 음료들은 ‘테이스팅 노트’를 달고 태어난다. 색과 향, 맛과 질감, 목의 촉감과 잔향으로 이어지는 그 체계는 14세기 유럽에서 포도주의 평가를 위해 처음 확립되었는데, 지금은 수제 맥주와 증류주, 커피와 차 등의 시음에서도 곧잘 사용된다. 풍미와 향기의 노트들은 사전 속 다양한 의미들을 고루 포함한다. 본능적인 경험에 대한 기록이며, 소비자에게 제품에 대한 정보로 유통된다. 코와 혀가 어떤 기색을 느낄지 상상하게 하고, 애호가들에겐 연애편지처럼 심장을 뛰게 하는 감각의 서신이다.

동물들은 냄새를 통해 위험을 파악하거나 번식의 대상을 찾는다. 죽음의 첫 번째 징조는 부패하는 냄새다. 헤어진연인이 쓰던 향수는 어떤 이미지보다 강력하게 기억을 열어젖힌다. 두 감각이 부추기는 사랑과 혐오에는 별다른 근거가 필요 없다. 후각과 미각은 유독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본능적인 감각이다. 노트들 역시 논리적 해설보다 요소들의 나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 사례들 중 가장 흥미로운 건 술의 테이스팅 노트일 것이다. 위스키나 와인의 테이스팅 노트에는 종종 하나의 집합 아래 모이기 어려운 단어들이 함께 보인다. 생강과 보리수꽃, 무화과, 요오드 가죽, 삼나무, 박하, 진흙, 가솔린, 장미, 아침의 숲, 혹은 해초의 냄새. 어떤 테이스팅 노트들은 차라리 시에 가깝다. 글자가 적힌 종이를 찢어 허공에 던졌던 다다이즘 시인 장 아르프가 그랬듯, 바다와 숲, 대지와 바람의 입맛이 온통 섞인이상한 시. 향수와 술, 차, 시가의 노트들은 대체로 제작자나 전문가가 남긴다. 그러나 그 결과를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 선입견은 감각적인 기쁨을 가로막는 가장 큰 방해물이다. 게다가 코와 혀의 판단은 철저하게 개인적이다. 문화권마다 맛에 대한 표현은 다르며, 저명한 위스키 전문가들의 테이스팅 노트가 천차만별인 경우도 있다. 맛과 냄새를 기록할 빈 종이 앞에서 취해야 할 태도는 분명하다. 오직 나만의 감각에 몰두한 채 코와 혀를 덮치는 관능을 마음껏 즐기는 것.

조 말론 런던, 라임 바질 앤 만다린
Jo Malone London, Lime Basil & Mandarin
1994년 와튼 스트리트의 향수 가게로 출발한 조 말론 런던은 상징적인 이름을 선호하지 않는다. 자연 그대로를 담은 향기처럼, 향수의 명명에서도 핵심적인 향기들을 나열해둘 뿐이다. 조 말론 런던을 대표하는 남성용 향수 중 하나인 라임 바질앤 만다린은 ‘카리브해의 산들바람에 실려온 라임 향과 톡 쏘는 바질 향에 백리향’을 더해 현대적이고 클래식한 향기를 완성했다.
톱 노트는 만다린과 라임, 자몽, 버가못, 오렌지. 맛있는 애피타이저 앞에서 군침이도는 듯한 향기 / 하트 노트는 바질과 백리, 하얀 붓꽃 / 베이스 노트는 앰버우드,파출리, 베티버. 과일과 허브의 조합을 부드럽게 아우르는 우디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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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카프레타, 로쏘 다 타볼라 Collecapretta Rosso da Tavola
지난 한 해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가장 큰 화제는 ‘내추럴 와인’이었다. 술을 빚는 동안 포도즙에 무엇도 첨가하거나 제거하지 않은 채 과실 자체의 효모균으로만 발효시키는 와인을 뜻한다. ‘유기농 와인’으로 분류되는 것들과 달리 극소량의 이산화황조차도 사용하지 않는다. 포도를 경작할 때도 자연으로부터 얻은 비료만을 사용한다. 그 결과, 내추럴 와인의 풍미는 한층 흥미로워진다. 신선한 향과 맛이 대부분이지만, 때로 젖은 낙엽이나 시골의 흙 냄새, 치즈 향을 느낄 수 있는 와인들도 있다. 콜레카프레타 로쏘 다 타볼라는 움브리아 남쪽의 아주 작은 마을에서 양조되는 내추럴 와인이다. 4헥타르에 불과한 포도밭에서는 한 해8000병 정도의 와인만 생산된다.
포도 품종은 90% 산지오베제와 10% Cilieglio / 알코올 도수는 13도 / 쇠고기와 사슴 고기에 어울리는 맛 / 마른 장미 꽃잎, 볶은 커피 원두, 신선한 미네랄, 붉은 과실 향, 담뱃재와 밀짚, 젖은 낙엽을 느낄 수 있는 풍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