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ce_PARADISE NOT LOST

눈을 감았다 떠 봐도
낙원은 사라지지 않았다.

Editor 정미환 Photographer 박남규,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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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우리는 생각한다. 항공권이 아까워. 휴양지에 가는 건 돈을 버리는 짓이야. 풀사이드의 완벽하고 지루한 풍경보다, 고난과 기쁨이 기다리는 대도시에서의 여행이 훨씬 흥미로우리라 예상한다. 그 기대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때보다 나이가 든 지금 나는 혼자 중얼거리곤 한다. 왜 여행은 특별한 경험이어야 하지? 힘겹고 불안한 여정을 일부러 택하곤 그 후일담에서 반드시 깨달음을 길어내려는 욕망도 참 이상한 것 아닐까? 여행에서라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몸이 녹을 듯 단순한 쾌락만 즐기면 안 될까? 연애를 시작한 후 3개월 정도 이어지는 호르몬 과잉 현상처럼 말이다. 오늘도 퇴근 시간을 기다리며 생각한다. 세상에는 정말로 그런 곳들이 있다. 지중해와 인도양, 태평양에 숨어 있는 작은 에덴들.
처음 리조트에 머물게 된 건 순전히 일 때문이었다. 남태평양 외딴섬에 단지 먹고 자기 위해 출장을 가는 직업은 기자가 유일할 것이다. 피지에는 장 미셸 쿠스토가 지은 리조트가 있다. 프랑스 상류층 출신의 쿠스토는 세계적인 다이버이자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그는 피지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산호초를 사랑했고, 결국 자신이 좋아하던 섬을 사들여 최고급 친환경 리조트를 지었다. 경비행기를 타고 피지 북서쪽의 사부사부 섬으로 향했다. 나는 그 리조트의 가장 좋은 스위트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4페이지짜리 기사를 쓰기로 했다. 러셀 크로우, 톰 크루즈가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보내는 곳이라고 했다. 풀빌라를 둘러보니 그럴 만도 했다. 2개의 독채에는 2개의 풀과 프라이빗 비치가 딸려 있었고, 각각의 빌라들은 도보로 7~8분은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빌라 한 채만 전담하는 ‘버틀러’는 가끔 찾아와 혹시 필요한 것은 없는지 상냥하게 물었다. 어쩌면 럭셔리란 자신의 선택에 의해 세계로부터 고립될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산 슈퍼카나 샤토 마고의 1982년 빈티지를 사는 것보다, 내킬 때마다 단지 ‘홀로 있고 싶어’ 군중으로부터 떨어지는 일이야말로 더 많은 돈과 여유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이미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20층 빌딩만큼 키가 큰 자이언트세콰이어 군락에서도, 끝없이 이어지는 고비 사막에서도 우리는 여행자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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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빌라에서 나는 완전히 혼자였다. 히비스커스 꽃이 놓인 침대와 숲속의 레인샤워 시설에 신나는 것도 잠시, 내 용적을 웃도는 여유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나는 해변으로 걸어 나갔다. 저녁이 시작되기 직전의 미지근한 오후였다. 푸른 수평선과 파도 위로 흐르는 빛, 하얀 모래. 그리 드문 풍경도 아니겠지만, 그 해변에 서 있는 사람이라곤 나뿐이었다. 우림의 소리는 호흡이 길다. 커다랗고 힘센 야자수 잎들은 바람에 좀 더 강하게 저항한 후 좀 더 깊게 휩싸인다. 거리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거리에서 열대 조류의 울음이 들려왔다. 주변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나는 한참을 꼼짝없이 서 있다가 잠깐 눈을 감았다 떴다. 세상이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낯설고 편안하며 고요한 세상.
그 후로 나는 리조트를 찾기 시작했다. ‘핫스톤’을 이마에 얹은 채 숲 한가운데에서 스파를 받은 적도 있었고, 풀 빌라에서 수영은 하지도 않고 하루 종일 책을 읽은 적도 있다. 리조트는 여행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리조트를 예약하기로 결심하는 순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는 낭비에 대한 관대함인지도 모른다. 아무 계획 없이 게으름을 피우다 보면, 세상에 살아남은 인간이라곤 혼자뿐인 것 같은 순간이 다시 찾아온다. 그때 나는 불칼을 든 천사가 지키고 있다는 낙원을 생각한다. 아담과 이브가 자의식을 깨달은 후, 그들에게 주어진 징벌은 에덴에서 쫓겨나 아이를 낳고 사람들 사이를 떠도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신이 만들어준 낙원에는 군중도, 계획도 없었다. 에덴에서 영원히 사는 건 행복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쨌든 거기에도 소리가 있었을 것이다. 에덴의 두 사람 또한 가끔 새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새들의 높고 짧은 노래, 야자수 잎이 서로를 스치는 소리, 파도의 들숨이 모래를 쓸어가는 소리. 그런 낙원이라면, 나는 기꺼이 남태평양 행 항공권을 다시 구입할 의향이 있다.